가짜뉴스는 인터넷이 만든 게 아니다

옐로 저널리즘부터 딥페이크까지 이어진 정보의 역사

오늘날 사람들은 가짜뉴스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떠올린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제목, 조작된 사진,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딥페이크 영상이 순식간에 퍼지는 모습을 보면 가짜뉴스가 디지털 시대에 처음 등장한 문제처럼 느껴진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실제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를 정교하게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의 역사는 인터넷보다 훨씬 오래됐다. 사람들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믿게 만들거나, 일부 사실을 과장해 대중의 감정을 움직이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보를 조작하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신문이 대중적인 매체가 되었을 때도 가짜뉴스는 사회적 문제였다.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등장한 옐로 저널리즘과 1938년 미국에서 발생한 라디오 방송 소동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정보의 신뢰성과 대중의 반응을 둘러싼 문제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가짜뉴스의 역사는 인터넷의 역사가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어온 인간의 정보 소비 역사다.

신문이 대중화되면서 정보의 경쟁이 시작되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신문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신문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신문을 읽는 대중도 크게 늘어났다.

신문은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만 정보를 얻는 시대를 바꾸었다. 일반 시민도 국내외 사건과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정보를 매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새로운 대중매체가 등장했다고 해서 모든 정보가 정확해진 것은 아니었다.

신문사 역시 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기업이었다. 더 많은 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사를 만들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충격적인 제목을 사용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빠르게 보도하는 경쟁이 나타났다.

정보의 정확성보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한 순간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대표하는 개념이 바로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다.

옐로 저널리즘과 자극적인 뉴스

옐로 저널리즘은 1890년대 미국의 신문 경쟁 과정에서 등장했다. 특히 조지프 퓰리처가 운영하던 신문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운영하던 신문 사이의 경쟁이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문들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큰 제목과 자극적인 기사, 선정적인 삽화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실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것보다 독자가 신문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뉴스의 표현 방식도 점점 과격해졌다.

옐로 저널리즘의 문제는 단순히 기사가 자극적이었다는 데 있지 않다.

뉴스가 사람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면 독자는 정보를 차분하게 판단하기보다 분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흥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전쟁이나 범죄처럼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사건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더욱 커진다.

이처럼 가짜뉴스와 정보 왜곡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관심을 얻기 위한 경쟁과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경제적 원리가 하나 등장한다.

관심은 돈이 될 수 있다.

신문을 많이 판매하려면 사람들이 신문을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신문을 읽으려면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결국 독자의 관심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질수록 정확한 정보보다 자극적인 정보가 유리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오늘날 클릭 수와 조회 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미디어와 놀랍도록 비슷한 구조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옐로 저널리즘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건이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이다.

당시 쿠바의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긴장이 높아졌다. 미국 언론은 쿠바에서 발생한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일부 신문은 스페인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미국 전함 메인호가 쿠바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해 침몰한 사건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폭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부터 일부 신문은 스페인이 메인호를 공격했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았다. 이러한 보도는 미국 내 반스페인 감정을 자극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익숙한 패턴이다.

사건이 발생한다.

정확한 원인이 확인되기 전에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가장 자극적인 설명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 설명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인터넷이 없던 19세기에도 이미 이러한 정보 확산 구조가 존재했던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이 옐로 저널리즘 하나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당시에는 쿠바의 독립 문제와 미국의 대외정책, 스페인과의 외교적 갈등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전쟁의 모든 원인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언론이 대중이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보는 사건 자체를 바꾸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라디오는 새로운 미디어가 되다

20세기 초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 정보 전달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신문은 독자가 직접 읽어야 했지만 라디오는 사람들이 집에서 바로 들을 수 있었다. 뉴스뿐 아니라 연설과 음악, 드라마와 광고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실시간에 가깝게 전달할 수 있었다.

라디오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새로운 매체였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혼란도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3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세계들의 전쟁(The War of the Worlds)〉 라디오 방송이다.

1938년 라디오 소동

1938년 10월 30일 미국 CBS 라디오에서는 오슨 웰스가 참여한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됐다. 이 작품은 H. G. 웰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방송은 실제 뉴스 속보처럼 들리는 형식을 사용했다. 당시 일부 청취자들은 방송의 전체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실제로 화성인이 침공했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이 사건은 이후 대중매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됐다.

다만 오늘날 연구에서는 당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청취자가 방송을 실제 뉴스로 착각한 것은 아니었으며, 당시 신문들이 라디오와의 경쟁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포 사례를 크게 보도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

1938년의 사건은 단순히 “사람들이 라디오를 믿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디어가 사건을 전달하는 방식과 언론이 그 사건을 다시 보도하는 방식이 대중의 인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정보의 내용뿐만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와 방식 역시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 시작되면 정보도 무기가 된다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전쟁과 선전의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는 적군을 공격하는 것만큼 자국민의 사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국민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하고, 군대는 병사들에게 싸워야 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선다.

적군의 잔혹성을 강조하거나 자국의 승리를 부각하고, 불리한 상황을 축소해서 전달하는 방식이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선전은 반드시 완전한 거짓말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의 일부만 선택해 보여주는 것 역시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가짜뉴스를 이해할 때도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잘못된 정보가 처음부터 완전히 만들어진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실제 사진에 잘못된 설명을 붙일 수도 있고, 오래된 사건을 새로운 사건처럼 소개할 수도 있으며, 사실의 일부만 잘라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할 수도 있다.

결국 거짓말과 정보 왜곡 사이에는 매우 넓은 영역이 존재한다.

가짜뉴스보다 무서운 것은 믿고 싶은 뉴스다

가짜뉴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모든 거짓말을 똑같이 믿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일치하거나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를 자극하는 이야기는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싫어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불리한 가짜뉴스를 믿기 쉬울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람은 자신의 불안을 설명해주는 단순한 이야기에 끌릴 수 있다.

따라서 가짜뉴스의 영향력은 거짓말의 정교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하는가도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심리는 19세기 신문에서도 존재했고 20세기 라디오에서도 존재했으며 오늘날 소셜미디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인터넷은 무엇을 바꿨는가

그렇다면 인터넷은 가짜뉴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인터넷은 가짜뉴스의 존재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확산 속도와 규모를 크게 변화시켰다.

과거 신문에서 잘못된 정보가 보도되면 다음 날 신문을 통해 정정할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면 방송국이 이후에 해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하나의 게시물이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다.

특히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반응하는 콘텐츠를 보여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논쟁적이고 충격적인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영상과 이미지가 결합하면서 정보의 설득력도 강해졌다.

사람들은 글보다 사진이나 영상을 더 쉽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에는 언론사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했다면 오늘날에는 일반 개인도 정보를 생산하고 대규모로 확산시킬 수 있게 됐다.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동시에 정보의 검증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커진 것이다.

딥페이크라는 새로운 단계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가짜뉴스 문제가 한 단계 더 복잡해지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하면 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실제처럼 합성할 수 있다. 과거에는 조작된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려면 상당한 기술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정교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과거의 가짜뉴스와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과거에는 거짓된 이야기를 만들더라도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제한적이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고 퍼뜨릴 수 있다.

결국 정보 생산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음성, 영상까지 모두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진짜보다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시대

딥페이크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거짓 영상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진짜 영상까지 의심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누군가의 실제 발언이 영상으로 남아 있어도 “AI로 만든 영상 아니야?”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발언을 딥페이크로 만들어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지면 사회 전체의 정보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도 중요한 문제다.

시민이 선거 후보자의 정책이나 정부의 발표, 기업의 정보 등을 판단하려면 기본적으로 사실에 대한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토론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가짜뉴스가 너무 많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 뉴스까지 가짜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정보를 믿을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검증하기보다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집단이나 사람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하나의 공통된 현실을 공유하기 어려워진다.

가짜뉴스의 역사는 미디어의 역사다

옐로 저널리즘과 1938년 라디오 소동, 그리고 오늘날의 딥페이크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이다.

신문은 활자와 삽화를 사용했고, 라디오는 목소리를 사용했으며, 인터넷은 영상과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반복되는 원리는 비슷하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정보가 더 빠르고 넓게 전달된다. 동시에 정보를 이용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도 등장한다.

따라서 가짜뉴스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특정 플랫폼이나 기술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정보를 어떻게 소비하고 판단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누가 이 정보를 만들었는가?

왜 만들었는가?

원래 출처는 무엇인가?

다른 신뢰할 만한 매체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가?

사진과 영상은 실제 맥락에서 사용된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습관적으로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진다

가짜뉴스의 역사를 보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보의 신뢰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쇄술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했지만 옐로 저널리즘도 만들어냈다.

라디오는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달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정보 혼란도 가능하게 했다.

인터넷은 누구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했지만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를 크게 높였다.

인공지능은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높였지만 딥페이크라는 새로운 위험도 만들어냈다.

결국 문제는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과 정보가 유통되는 구조에 있다.

가짜뉴스는 인터넷이 만든 발명품이 아니다. 인터넷은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속도와 규모를 더했을 뿐이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경제적 이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사람들은 가짜뉴스를 만드는가?

물론 정치적 목적이나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가짜뉴스가 거대한 정치적 음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면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을 유입시키고, 여러 페이지를 이동하게 만들면 광고 노출이 증가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정확한 정보보다 관심을 끄는 정보가 경제적으로 더 유리해질 수 있다.

19세기 신문이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활용했다면, 오늘날 일부 콘텐츠 제작자는 조회 수와 광고 수익을 위해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매체는 달라졌지만 관심을 경제적 가치로 바꾸는 구조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앞으로의 문제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가짜뉴스를 만드는 비용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 사람이 몇 시간 동안 직접 영상을 편집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미지와 음성, 영상 콘텐츠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콘텐츠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에 확인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무엇이 가짜인가?”라는 질문뿐만 아니라 “무엇을 확인할 시간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해질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시대에서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기 어려운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과거의 가짜뉴스가 오늘날에 주는 교훈

옐로 저널리즘과 1938년 라디오 소동에서 오늘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새로운 미디어를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항상 더 편리하고 빠른 정보 전달을 약속한다. 그러나 정보가 빨리 전달된다는 것과 그 정보가 정확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19세기 사람들은 신문을 믿었고, 20세기 사람들은 라디오를 신뢰했으며, 오늘날 사람들은 검색 결과와 소셜미디어, 영상 콘텐츠를 이용한다.

매체는 달라졌지만 사람들의 심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에 끌리고, 충격적인 정보에 관심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이 많이 공유하는 정보를 사실처럼 느끼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뉴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언론사를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정보가 왜 그렇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의 출처다

가짜뉴스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계속 바뀌었지만 문제의 핵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문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는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영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인터넷이 등장한 뒤에는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는 사람이 직접 만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콘텐츠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매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믿는 법을 배워야 했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특정 기술을 무조건 믿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확인하고, 서로 다른 출처를 비교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정보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결국 가짜뉴스와 싸우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습관이다.

옐로 저널리즘의 시대에도 가짜뉴스는 존재했고, 라디오의 시대에도 존재했으며, 인터넷 시대에도 존재한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형태의 가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진위를 판단해야 한다는 인간의 과제는 변하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인터넷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인터넷 이전에도 사람들은 거짓 정보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으며, 때로는 그 믿음이 사회와 정치의 흐름까지 바꾸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이것이 인터넷에서 봤기 때문에 가짜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정보가 사실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에는 이 질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보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할 줄 아는 사람이 더 강한 판단력을 가질 수 있다.

빠르게 공유하는 능력보다 잠시 멈춰서 확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결국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술을 사용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신문과 라디오,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거쳐온 가짜뉴스의 역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디어는 계속 변한다.

정보의 속도도 계속 빨라진다.

가짜를 만드는 기술도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출처를 의심하며 다른 정보를 비교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가짜뉴스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기술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믿기 전에 한 번 더 질문하는 능력이다.


게시됨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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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yuna Kim
kyunakim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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