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금융공황이 남긴 질문
은행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정부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긴 은행을 그냥 시장에서 퇴출시키면 부실한 금융기관을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은행의 파산이 다른 은행으로 번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은행은 서로 돈을 빌려주고, 기업과 가계의 예금을 보관하며, 각종 결제 시스템을 연결한다.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생산시설에 투자한다. 가계 역시 은행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고 생활비를 관리한다.
따라서 한 금융기관의 문제가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산되면 단순히 한 회사가 망하는 문제가 아니다. 금융기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기업과 가계까지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고, 결국 경제 전체의 신용이 얼어붙을 수 있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이 등장한다.
“국가는 어디까지 금융기관을 구해야 하는가?”
문제는 구제금융에도 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은행을 구해준다면 금융기관은 위험한 투자를 하더라도 결국 국가가 뒤처리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정부가 어떤 금융기관도 구하지 않는다면 작은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
이 딜레마는 현대 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다.
11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에서도 거의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1907년 금융공황이다.
그때도 똑같았다
1907년 미국 금융시장은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당시 미국은 오늘날과 달리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에는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할 기관이 없었고,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종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명확한 주체도 없었다.
이것은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각 은행이 필요한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모든 금융기관이 동시에 현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에는 주식시장의 투기와 금융기관의 과도한 위험 부담이 있었다. 1907년 가을, 구리 회사인 United Copper의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투기가 실패하면서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특히 니커보커 트러스트(Knickerbocker Trust Company)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예금자들이 돈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가 돈을 찾기 시작하면 금융기관은 곤란해진다.
은행은 고객의 모든 예금을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금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나 다른 금융기관에 대출되어 있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시에 돈을 찾으러 오면 정상적인 은행도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뱅크런(bank run)**이다.
한 사람이 “은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찾으러 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불안해진다. 결국 실제로 은행이 건전한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동시에 돈을 인출하면서 은행이 무너질 수도 있다.
금융위기의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대신 개인이 금융시장을 구하다
1907년 금융공황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J. P. 모건이다.
당시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붕괴할 때 최종적으로 개입할 기관이 없었다. 결국 거액의 자본과 금융 네트워크를 가진 민간 금융가 모건이 사실상 위기 대응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모건은 금융기관들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어떤 기관을 지원해야 하는지 판단했다. 금융기관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은행과 신탁회사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가들을 한데 모았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이상한 장면이다.
국가 전체의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는데 정부기관이 아니라 한 민간 금융가가 사실상 소방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건은 자신의 영향력과 자금을 이용해 금융기관을 지원했고 뉴욕 금융시장의 추가적인 붕괴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미국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약점을 보여주었다.
금융위기를 막는 데 필요한 최종 대부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시장의 경쟁이 금융기관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포가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순간에는 시장 자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하고, 모두가 현금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그 역할을 당시에는 모건이 맡았다.
하지만 국가 전체의 금융시스템을 한 개인의 판단과 자금력에 의존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다.
1907년 금융공황이 남긴 질문
1907년의 상황을 오늘날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 구분 | 1907년 미국 | 오늘날 |
|---|---|---|
| 금융위기 | 은행·신탁회사 뱅크런 | 은행 유동성·신용 위기 |
| 중앙은행 | 연방준비제도 없음 | 중앙은행 존재 |
| 최종 유동성 공급 | J. P. 모건 등 민간 금융가 | 중앙은행·정부 |
| 예금 보호 | 현대적 제도 없음 | 예금보험 제도 존재 |
| 정부 역할 | 제한적·간접적 | 유동성 공급·규제·구제금융 |
| 핵심 위험 | 뱅크런과 신용 경색 | 시스템 리스크와 도덕적 해이 |
오늘날 금융시스템은 1907년보다 훨씬 복잡하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회사, 투자은행, 자산운용사, 헤지펀드와 각종 금융시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기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돈의 흐름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907년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1907년 금융공황은 단순한 주식시장 폭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아무도 최종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는 구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1907년 당시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민간 금융기관과 금융가들이 서로 돈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반복될수록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특히 금융시장 전체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은행의 자금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미국에서는 금융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커졌다.
그 결과 1913년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가 설립된다.
1907년의 위기가 연방준비제도 설립의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중앙은행 제도에 대한 논의를 크게 촉진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장을 자유롭게 두는 것과 시장이 무너졌을 때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생기면 문제가 끝날까?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긴급하게 돈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 금융시스템은 위기 상황에서 훨씬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위험한 투자를 해도 문제가 생기면 중앙은행이 도와주겠지.”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다.
금융기관이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약해지면 위험을 감수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현대 금융시스템에서는 단순히 은행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은행이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어떤 자산을 보유할 수 있는지, 유동성을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규제가 함께 필요하다.
즉,
구제할 능력과 구제하지 않을 원칙을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은행을 구하는 것과 은행가를 구하는 것은 다르다
금융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가 금융시스템을 보호하는 것과 특정 금융기관의 경영진이나 주주를 보호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잃고 결제 시스템이 멈추는 것을 막는 것은 경제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경영진이 잘못된 투자로 큰 손실을 만들었는데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정부 지원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특정 은행의 주주가 아니다.
금융시스템의 기능 자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구제금융은 금융안정 정책이 아니라 민간 손실을 국민에게 이전하는 정책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금융기관을 지원할 때는 조건이 필요하다.
경영진의 책임을 묻거나 주주의 손실을 감수하게 하고, 필요한 경우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요구해야 한다.
금융시스템은 살리되 잘못된 경영에 대한 책임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07년과 2008년은 무엇이 달랐나
1907년 금융공황 이후 미국은 중앙은행 제도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이 존재하면 금융위기는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당시 미국의 주택시장 붕괴는 주택담보대출과 복잡한 금융상품을 통해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됐다.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은 다른 금융기관의 자산과 연결되어 있었고, 금융기관 사이의 신뢰가 빠르게 약해졌다.
결국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는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대규모 개입에 나섰다.
여기에서도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왜 국민의 세금과 정부의 힘으로 금융기관을 구해야 하는가?”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나왔다.
“대형 금융기관을 그대로 무너뜨리면 경제 전체가 더 큰 피해를 보는 것 아닌가?”
이것이 금융위기의 가장 어려운 딜레마다.
은행 하나를 구하는 것만 보면 불공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은행이 무너진 뒤 다른 은행과 기업, 가계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면 정부는 결국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챙겨야 할 것
1907년 금융공황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는 금융위기의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달라졌고 금융상품도 훨씬 복잡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동시에 돈을 찾으려고 하고 금융기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시스템이 빠르게 흔들린다는 기본 원리는 그대로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국가는 항상 비슷한 선택 앞에 놓인다.
은행을 그냥 무너지게 둘 것인가.
아니면
금융시스템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것인가.
1907년 미국은 두 번째 선택을 사실상 민간 금융가에게 맡겼다.
그 경험은 결국 미국 금융제도의 변화를 촉진했고 중앙은행이라는 새로운 제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존재가 모든 금융위기를 없애지는 못했다.
오히려 금융시스템이 커질수록 국가는 더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은행이 너무 커서 망하게 둘 수 없다면 금융기관은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해도 되는가.
정부가 금융시스템을 보호한다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은행을 구하는 것이 국민을 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은행을 운영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인가.
1907년에는 J. P. 모건이라는 한 사람이 이 질문에 답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중앙은행과 정부, 금융감독기관이 그 역할을 나눠 맡고 있다.
그러나 질문 자체는 여전히 같다.
금융시장이 무너질 때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1907년의 교훈은 국가가 금융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금융시장이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가 된 이상, 위기 때 최종적으로 시스템을 안정시킬 장치는 필요하다.
다만 그 장치가 너무 강력하면 금융기관이 위험을 사회에 떠넘길 수 있고, 너무 약하면 작은 문제가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금융위기의 핵심은 구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실패하게 둘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을 살릴 필요가 있다면 그 이유는 은행이라는 기업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은행이 무너졌을 때 수많은 기업과 가계, 다른 금융기관까지 함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보호가 금융기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1907년 미국이 금융공황을 겪고 중앙은행 제도를 만들게 된 이유도 바로 그 어려운 경계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00년이 넘은 지금도 세계 금융시장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은행은 기업인가, 아니면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인프라인가.
어쩌면 금융위기의 진짜 문제는 은행이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더 어려운 문제는 은행 하나의 실패를 어디까지 시장의 실패로 인정하고, 어디서부터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1907년의 미국은 이 질문에 답할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의 금융가에게 의존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 예금보험제도라는 훨씬 정교한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시장을 살릴 것인가.
은행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은행이 무너지더라도 경제 전체를 보호할 것인가.
역사는 한 가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금융위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돈이 부족해지는 순간이 아니라 서로를 믿지 못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1907년의 금융공황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신뢰를 보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결국 선택해야 한다.
시장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결국 누가 부담할 것인가.
100년 전 J. P. 모건이 금융시장의 한가운데에서 고민했던 질문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은행이 흔들릴 때 국가는 어디까지 구해야 하는가.
금융의 역사는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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