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은 생각보다 강하다. 집을 사지 않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고, 지금 사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생긴다. 실제로 집값이 오르는 기간이 길어지면 이러한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문제는 집값 상승에 대한 믿음이 어느 순간 경제의 기본적인 원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미국에서는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은행은 주택을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빌려줬고,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샀다. 금융기관은 주택담보대출을 다시 여러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정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주택가격 하락은 대출 부실로 이어졌고, 대출 부실은 금융기관의 손실로 이어졌다. 결국 금융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세계경제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그렇게 갑자기 무너졌을까.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은 계속 오를까
2000년대 초 미국 주택시장에는 낙관론이 강했다.
인터넷 버블이 붕괴하고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경제가 불안해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췄다. 낮은 금리는 대출 비용을 줄였다.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쉬워지면서 주택을 구매하려는 수요도 커졌다.
집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 낮은 금리는 매력적이었다.
예를 들어 같은 30만 달러짜리 집이라도 금리가 낮으면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주택 구매가 쉬워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시장에 들어왔다.
수요가 늘어나자 주택가격이 상승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단순히 집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가격이 오르면 다음 사람은 더 높은 가격에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다. 집을 사는 행위가 주거 목적을 넘어 투자 수단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졌다
주택가격이 오르자 금융기관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집이라는 담보가 있기 때문에 차주가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집을 팔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출의 대상이 점점 확대됐다는 것이다.
신용등급이 높고 소득이 안정적인 사람뿐 아니라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이 제공됐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다.
서브프라임은 일반적으로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차주를 대상으로 한 대출을 의미한다.
원래라면 은행은 이런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신용점수가 낮다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른 논리가 작동했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집을 팔면 된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이 논리는 어느 정도 성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만 달러짜리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뒤 차주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더라도 집값이 25만 달러로 상승했다면 은행은 담보를 처분해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바로 이 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금융기관은 위험을 다른 곳으로 넘겼다
서브프라임 위기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은행이 위험한 사람에게 대출을 해줬다”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대출이 금융시장 전체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가지고 있으면 대출금이 장기간 회수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은 이 대출들을 여러 개 묶어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저당증권(MBS)**이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여러 개 모아 금융상품으로 만들고 이를 투자자에게 판매하면 은행은 대출금을 계속 보유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자금을 확보해 새로운 대출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빠르게 확대됐다.
여기에 여러 대출을 묶어 만든 상품을 다시 구조화하는 금융기법까지 등장했다.
주택시장에 발생한 위험이 은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투자은행, 보험회사, 연기금, 투자펀드 등 금융시장 전체로 퍼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이 분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위험이 금융시스템 곳곳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6년을 전후해 미국 주택시장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주택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이 하락했다.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집값이 조금 떨어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금리 상승과 소득 부족으로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기 시작했다.
특히 초기에는 낮은 금리를 적용하다가 이후 금리가 상승하는 형태의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커졌다.
대출 상환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집을 내놓기 시작했다.
주택 매물이 늘어나면서 가격은 더욱 하락했다.
가격이 떨어지자 담보가치도 하락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더 이상 상황이 단순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30만 달러의 집을 담보로 27만 달러를 빌려줬는데 집값이 20만 달러가 된다면 차주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집을 팔아도 대출금 전액을 회수할 수 없다.
이때부터 문제가 연쇄적으로 커졌다.
믿음이 바뀌는 순간 시장도 바뀐다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대도 중요하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은행도 담보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출을 확대할 수 있다. 투자자 역시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행동이 반대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집을 사는 대신 기다린다.
은행은 대출 심사를 강화한다.
투자자는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팔려고 한다.
주택을 보유한 사람도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이 동시에 나타나면 시장의 하락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무서운 점도 여기에 있었다.
주택가격이 떨어진 것 자체보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동시에 무너진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리먼브라더스의 붕괴
2008년 9월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리먼브라더스는 주택시장과 연결된 금융상품에 상당한 규모로 노출되어 있었다. 주택가격 하락과 모기지 부실이 확대되면서 금융기관의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자 금융시장에서는 상대방을 믿기 어려워졌다.
은행은 다른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들이 서로의 재무상태를 믿지 못하면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워진다.
금융시장에서 신뢰가 사라지면서 신용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빌리기 어려워지고 투자와 고용도 위축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주택시장에서 시작된 문제가 금융시장으로 번지고 결국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왜 세계경제까지 흔들렸을까
미국의 주택시장 문제가 세계경제를 흔들 수 있었던 이유는 금융시장이 이미 국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기관이 만든 주택 관련 금융상품은 미국 안에서만 거래된 것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과 투자자들도 이러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에서 대출 부실이 발생하면 미국 금융기관만 손실을 입는 것이 아니었다.
유럽의 금융기관도 손실을 입을 수 있었고, 금융기관의 손실이 커지면 기업과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신용도 줄어들 수 있었다.
결국 주택가격 하락은 금융시장 전체의 문제로 발전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기업은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고, 소비자는 주택과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금융기관을 이용한다.
그런데 금융기관이 위험을 두려워해 대출을 중단하면 경제활동 자체가 위축된다.
이것이 금융위기가 일반적인 경기침체보다 훨씬 위험한 이유다.
정부는 왜 금융기관을 구했을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는 금융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조치를 시행했다.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부실자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추진됐다. 미국 정부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대규모 구제금융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논쟁이 발생했다.
“왜 잘못된 투자를 한 금융기관을 국민의 돈으로 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금융위기를 이야기할 때 반복된다.
금융기관을 구하지 않으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을 구해주면 금융기관이 위험한 행동을 해도 결국 정부가 책임질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해이 문제라고 설명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시장 안정과 시장 규율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남겼다.
한국의 집값과도 무관하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를 미국의 과거 이야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문제는 중요한 경제 이슈다.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가 커질수록 금리 변화가 가계의 소비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금리가 낮을 때는 대출을 활용해 집을 구매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특히 주택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대출 규모까지 커지면 작은 금리 변화도 가계의 재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현재 주택시장을 2008년 미국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금융제도와 대출 규제, 주택시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을 그대로 반복해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위험이 어떻게 커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대출이 확대되며 금융기관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상황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시장의 작은 변화도 예상보다 큰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집값은 왜 계속 오를 것처럼 보이는가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말 가운데 하나는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말이다.
가격이 몇 년 동안 계속 오르면 사람들은 가격 상승을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10년 동안 집값이 올랐다면 앞으로도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과거의 가격 상승은 미래의 가격 상승을 보장하지 않는다.
집값은 소득, 금리, 공급, 인구, 정책, 투자수요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대출을 이용한 주택 구매가 증가할수록 금리의 영향은 커진다.
금리가 낮을 때는 높은 집값도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같은 집이라도 매달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달라진다.
따라서 주택가격을 볼 때 단순히 “얼마나 올랐는가”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어떤 돈으로 집을 사고 있는지, 그 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 가격이 떨어졌을 때 금융기관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2008년 위기가 남긴 가장 큰 교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승에 대한 믿음이 금융시스템 전체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집값이 오른다는 믿음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대출을 받도록 만들었다. 은행에는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하도록 만들었다. 금융기관에는 더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들도록 만들었다. 투자자에게는 위험한 상품을 안전하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무너지자 모든 과정이 반대로 움직였다.
주택가격 하락은 대출 부실로 이어졌고, 대출 부실은 금융기관의 손실로 이어졌다. 금융기관의 손실은 신용경색으로 이어졌고, 신용경색은 기업과 가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켰다.
결국 하나의 믿음이 만들어낸 상승이 하나의 의심으로 무너질 수 있었다.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주택시장을 바라볼 때 비슷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집값은 왜 오르고 있는가.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해서인가.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인가. 금리가 낮아서인가. 투자수요가 증가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앞으로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중요하다.
가격 상승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의 사례는 집값이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주택은 금융과 연결되어 있고, 금융은 기업과 고용, 소비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시장의 변화가 경제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은 사람들에게 부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2008년의 교훈은 집값이 반드시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집값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위험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Kyu 생각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보면 부동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격 자체보다 사람들의 믿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는 대출도 투자도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같은 대출이 부담으로 바뀐다. 지금 한국에서도 높은 집값과 가계부채, 금리 문제를 함께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현재 한국의 상황이 2008년 미국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 믿음이 얼마나 많은 빚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는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과거의 위험을 잊는 순간 비슷한 문제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Federal Reserve History, Subprime Mortgage Crisis
Federal Reserve History, The Great Recession and Its Aftermath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The Housing Meltdown: Why Did It Happen in th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Monetary Fund, Outbreak: U.S. Subprime Contagion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Annual Economic Repor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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