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기가 유럽을 쪼갰듯, 알고리즘이 세계를 쪼갠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한 사람은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 사건 자체를 처음 들어봤다고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고, 심지어 같은 시간에 같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도 서로 전혀 다른 현실을 보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SNS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오래 보는지, 무엇을 클릭하는지, 어떤 게시물에 반응하는지를 계속 학습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다시 보여준다.

처음에는 꽤 편리하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내가 관심 있는 것만 골라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신문을 펼치고 기사를 찾아야 했다.

TV에서 어떤 뉴스를 내보낼지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관심 있는 정보가 알아서 화면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보고 싶은 정보와 내가 알아야 하는 정보가 항상 같은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이야기를 확인해주는 콘텐츠에 더 쉽게 끌린다.

화나게 만드는 이야기에도 오래 머문다.

내 생각과 비슷한 사람의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되는 주장은 불편해서 넘겨버릴 수 있다.

알고리즘은 이런 행동을 학습한다.

그리고 다시 비슷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한 번의 선택이 다음 선택을 만들고, 다음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은 자신이 보고 있는 정보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현상은 정말 오늘날에만 등장한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약 500년 전에도 유럽에서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 기술은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아니었다.

인쇄기였다.


그때도 똑같았다 — 인쇄기가 등장한 순간

15세기 중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유럽의 정보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쇄술 이전에는 책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책은 사람이 직접 베껴 써야 했다.

한 권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비용도 높았다.

당연히 책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었다.

정보는 느리게 움직였다.

그리고 정보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의 힘도 컸다.

그런데 인쇄기가 등장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찍어낼 수 있게 됐다.

책뿐만 아니라 팸플릿과 종교 문서, 정치적 주장까지 빠르게 복제할 수 있었다.

정보가 훨씬 싸고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쇄술은 완벽한 혁신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좋은 정보만 빠르게 퍼진 것이 아니었다.

거짓말도 빨라졌다.

과장도 빨라졌다.

선동도 빨라졌다.

교회를 옹호하는 글도 인쇄됐고 교회를 비판하는 글도 인쇄됐다.

서로 반대되는 주장들이 같은 도시에서 동시에 퍼졌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쉽게 자신이 믿고 싶은 주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지금과 묘하게 닮아 있다.

SNS에 가짜뉴스가 존재한다고 해서 SNS라는 기술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쇄기에 거짓된 주장이 인쇄됐다고 해서 인쇄술이 실패한 기술이었던 것도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는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함께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회 전체를 바꾼다.


종교개혁은 왜 그렇게 빠르게 퍼졌을까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사건이 종교개혁이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문제를 비판하면서 벌어진 논쟁은 인쇄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로 확산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루터의 주장과 글은 빠르게 복제됐다.

팸플릿이 만들어졌고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루터에게 반대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인쇄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의 주장만 들을 필요가 없었다.

서로 다른 주장이 경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인쇄술의 진짜 힘이 드러난다.

인쇄기는 단순히 기존 권위의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드는 기계가 아니었다.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계이기도 했다.

가톨릭교회를 옹호하는 글과 비판하는 글이 동시에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루터의 글을 읽었고, 누군가는 교회를 옹호하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것을 다시 주변에 퍼뜨렸다.

하나의 정보 공간이 여러 개의 정보 공간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날 SNS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특정 정치인의 발언만 계속 보고, 다른 사람은 그 정치인을 비판하는 영상만 계속 본다.

각자의 화면에서는 자신이 믿는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종교가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오늘날에는 정치와 사회적 이슈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구조에는 닮은 점이 있다.


인쇄술은 사람을 연결했을까, 갈라놓았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나온다.

인쇄술은 유럽을 연결한 것일까, 아니면 분열시킨 것일까?

둘 다였다.

인쇄술 덕분에 책과 지식이 훨씬 널리 퍼졌다.

문해력이 높아졌고 교육의 기회도 확대됐다.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더 쉽게 공유할 수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는 속도도 빨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인쇄술을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혁신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그런데 동시에 인쇄술은 기존의 종교적 권위를 흔들었다.

서로 다른 주장이 빠르게 퍼지면서 사회적 갈등도 커졌다.

즉 새로운 미디어는 사회를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사회를 흔들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기술은 사회를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기술이 연결과 분열을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다.

SNS도 마찬가지다.

SNS 덕분에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바로 대화할 수 있다.

전문가의 지식을 무료로 접할 수도 있다.

재난이나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의 정보가 몇 초 만에 전 세계로 퍼진다.

그런데 동시에 가짜뉴스와 선동도 몇 초 만에 퍼진다.

정보가 많아졌다고 해서 사회가 더 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정보만 골라볼 수 있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선택’이다

여기서 인쇄술 시대와 알고리즘 시대 사이의 중요한 차이가 하나 나타난다.

16세기 사람들은 책을 직접 골라야 했다.

물론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읽는지에 영향을 받았다.

그래도 책을 펼치는 행동 자체는 사람이 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다르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다.

하루에 올라오는 게시물과 영상들을 사람이 전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대신 골라준다.

문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골라주느냐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것일까?

오래 머물 만한 것일까?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는 것일까?

논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것일까?

이 기준에 따라 우리의 정보 세계가 달라질 수 있다.

사용자는 스스로 정보를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먼저 수많은 정보 가운데 일부를 골라 화면에 올려놓는다.

우리는 그 안에서 선택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정보가 많아졌는데 왜 서로 모를까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방송을 봤다.

물론 그 미디어가 항상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편향도 있었고 오보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사회 구성원들이 비슷한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이 공통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도 완전히 다른 콘텐츠가 나타난다.

한 사람의 화면에는 경제 뉴스가 가득하다.

다른 사람의 화면에는 정치 영상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과학 콘텐츠를 계속 보고, 다른 사람은 연예 콘텐츠만 본다.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이다.

그런데 사회 전체를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서로 다른 정보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현실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까?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같은 사실을 두고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로 다른 사실을 알고 있을 수 있다.

한쪽에서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 사건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상태에서는 토론이 어려워진다.

논쟁을 하려면 최소한 같은 출발선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쇄기와 알고리즘은 무엇이 다른가

둘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구분인쇄술 시대알고리즘 시대
새로운 기술인쇄기추천 알고리즘
정보 형태책·팸플릿게시물·영상
가장 큰 변화정보의 대량 복제정보의 개인화
정보 선택사람이 직접 선택알고리즘이 먼저 선별
장점지식 접근성 확대정보 탐색의 효율성
문제종교·정치적 분열미디어 양극화
확산 속도과거보다 빠른 복제실시간 확산
사회적 결과종교적 권위의 분열서로 다른 정보 세계 형성

물론 두 시대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쇄기와 알고리즘은 작동 방식부터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이 바뀌면 사회의 구조도 바뀐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을 없애야 할까

여기서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알고리즘 때문에 양극화가 생겼으니 알고리즘을 없애면 된다.”

정말 그럴까?

인쇄술이 종교적 갈등을 키웠다고 해서 인쇄기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을 없앤다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갖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원래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문제는 그 선택을 기술이 얼마나 강하게 증폭시키느냐에 있다.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취향을 지나치게 좇으면 정보의 편식이 심해질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한 관점을 적절히 노출한다면 정보 접근성을 넓히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정보를 보여주고, 그 기준을 누가 결정하며, 이용자는 그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봐야 할 것은 ‘내 화면’이다

미디어 양극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을 문제로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가짜뉴스만 본다.”

“저쪽 사람들은 편향된 언론만 믿는다.”

그런데 잠깐 멈춰볼 필요가 있다.

내 화면은 정말 다를까?

내가 매일 보는 뉴스는 누구에 의해 선택되고 있을까?

내가 자주 보는 영상과 비슷한 콘텐츠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거의 보지 않는 관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을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알고리즘 시대에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어떤 정보만 반복해서 보고 있는지 아는 능력도 중요하다.

가끔은 평소 보지 않던 언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어떤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의견에 동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체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언제나 세상을 바꿨다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접하기 시작했다.

정보는 더 빠르게 퍼졌다.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생각도 훨씬 빠르게 확산됐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권위는 흔들렸고 사회는 갈라졌다.

하지만 인쇄술이 인류에게 가져온 장기적인 변화는 단순한 분열로 끝나지 않았다.

교육과 과학, 지식의 확산을 촉진했다.

오늘날 알고리즘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찾는 시간을 크게 줄여준다.

관심 있는 콘텐츠를 쉽게 발견하게 해준다.

전 세계의 정보를 손쉽게 접하게 해준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 수도 있다.

내가 보는 정보와 다른 사람이 보는 정보가 너무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현실을 믿게 된다면?

그때 사회의 문제는 단순히 의견 차이가 아니다.

공통된 사실을 공유하는 능력 자체가 약해지는 것이다.

500년 전 인쇄술은 정보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이 하나 더 생긴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정보는 역사상 가장 많이 열려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 정보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정보를 더 많이 만드는 기술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정보의 방에 갇힌 사람들이 다시 같은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일까?

500년 전에는 인쇄기가 정보의 세계를 바꿨다.

오늘은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다음에 바뀌어야 할 것은 기술일까, 아니면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일까.


게시됨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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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yuna Kim
kyunakim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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